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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4 [Book_에세이] 바다의 기별 - 김훈

사유하는 사람의 글은 복잡하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의 사건에서 많은 기억들을 끄집어 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증이 손에 묻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직업란에 '자전거 레이서'라고 쓰는 김훈 님의 유명한 소설들이 있지만 사실 나는 그 중 어느 것도 읽어본 적은 없다. 이 책 맨 뒤에 있는 소설 서문들을 보면서 이런 책들이 있었구나 알았을 뿐이다.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끝'이라는 마감을 하기까지 완성된 문장들로 엮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보다. 김훈 님이 기자 출신이라고 하는 사실을 책을 읽는 도중에 알게 되었는데 어쩐지 글을 마무리 하는 모양새가 좀 남다르다 생각하고 있던 중이어서 그게 납득이 가자 홀가분해지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 같은 범인은 아무래도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새 마음을 열어놓게 되는 법이라서 처음 눈이 번쩍 뜨였던 글은 <토지>의 박경리 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경리 님과 김지하 님이 장모와 사위 관계였다는 것도 몰랐었지만, 내가 읽었던 글의 작가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던 두 사람이 실제 생을 영위했고 또 그 '격변의 한국사' 중간에 서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 그 여인네의 야윈 몸으로부터 아이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이어서 여인네는 자꾸만 몸을 추슬러 아이를 끌어올렸다. 아무도 그 여인네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그 여인네는, 교도소 정문 앞에서 들끓는 그 어떤 사람과도 무관해 보였다. 그때 그 여인네는 길섶에 돋아난 풀 한 포리보다도 더 무명해보였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아무런 이유가 없는, 어떤 자연현상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등에 매달린 아이가 발이 시려우면 안될 텐데, 그런 걱정만 했다는 구절에서 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체제니, 자유니 하는 것들은 등에 업힌 아이와는 무관한 것이니 말이다.

뇌종양으로 죽은 친구의 MRI 사진을 보게 된 부분에서 사실 나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아마 병과 죽음에 대한 그 글에서 그 사진은 그리 의미가 없는 것이었던 것도 같다. 내게는 그 순간 떠올랐던 엑스레이 사진 한장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내가 본 그 엑스레이는 폐 여기저기 덩어리진 그림자가 비치는 폐암 말기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급히 찍은 그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화장실 칸막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생생한데 열달이 지나 내 아버지 같던 교수님은 돌아가셨고 그리고도 또 두 해가 흘러 두번째 기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뵈러갈 준비를 해야겠다.
이렇게 공유라고 할 것도 아닌 것에서 혼자 공통분모를 찾고, 혼자 감동하는 이기적인 독자인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찾듯이 글을 읽어내려갔다. 지두화를 그리는 오치균 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림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해금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서 해금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지를 않나, <칼을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품성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시골 할머니댁 가는 입구에 있는 이락사에 가봤던 기억을 더듬다가, <난중일기> 해서본은 어떻게 구할 수 있나라고 생각하지 않나,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에 대한 심각한 글을 보면서 그래도 요새 초등학생들은 한문 잘하니까 잘 되지 않을까 혼자서 납득하고 있지를 않나, <자전거 여행> 서문에서 자전거 할부금에 대한 우스개소리를 보면서 김훈 님이 레이서로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내 지인을 통해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지를 않나, 그런 식으로 나는 내가 보고 싶은데로 이 책을 읽어'재껴버렸'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다의 기별>은 공유하는 경험들을 발견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 해금 연주자는 한 손으로는 활을 쥐고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뽑아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줄을 통째로 쥐었다 폈다 눌렀다 풀었다 하면서 소리를 가지고 논다. 모든 현악기 중에서 해금은 인간의 육체에 가장 가깝고, 육체의 떨림이 선율 속에 살아있다. 해금의 음색은 가지런하지 않고 많은 음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 선율은 많은 불협화음들을거느린 것처럼 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한개의 음이 그 음 주변의 다른 음을 이끌고 나가면서 음들은 부딪치고 또 명멸한다. 해금 연주자는 손아귀로 줄을 쥘 때 소리의 진동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해금에서는 몸의 소리, 몸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가 나온다. 해금의 소리는 주물러서 나오는 소리다. 그 소리는 가까운 것들을 멀리 밀쳐내고 먼 것들을 가까이 불러들인다. 해금의 소리는 놀리적이지 않고 아정하지 않지만,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로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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