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기억에 많이 남을 영화. 작년에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1편을 어쩌다 보니 못보고 넘어갔는데 이번에 2편을 보면서 너무 감동을 받아서 그날이던가, 다음날이던가 1편을 바로 봤다는 사실.
작년 트랜스포머가 그렇게도 인기이던 그 때 기사평에서 남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차인 범블비가 너무 강조되지 않는 이상한 영화라던 글처럼, 보는 내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옵티머스 프라임의 초간지.
사실 태권브이를 연상시키는 파랑과 빨강의 조합이라 인터넷의 사진들만 봤을 때는 '저게 뭐?'라는 생각이 컸었는데 역시 대중들이 열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선의를 위해 싸우는 그 모습이 어찌나 멋있는지.. 남자주인공을 구하기 위해서 죽으면서도 멋진 모습은 그대로이고, 고철처럼 끌려 다니면서도 내 눈길을 흐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옵티머스 프라임의 모습인 것 아니냐 말이다. 너무 흥분했나? 여튼, 나중에 본 1편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의 원래 모습이 다른 프라임들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고, 마침 지나가던 멋진 트럭에게 감사 ^^
내 친구는 나보다 한주쯤 일찍 2편을 봤는데, 여주인공인 메간 폭스에 대한 평가가 무척 인상에 남았다. 첫 등장에 오토바이에 누워 있는 모습을 아래쪽부터 잡는게 넘 웃겼다고, 게다가 마지막 씬에 가까워 올 때 남자주인공과 손을 잡고 뛰는 모습에서 슬로우 화면으로 메간 폭스를 잡는게 너무 짜증이 났다는 친구의 말에 해당 장면에서 왠지 웃음이 나왔다. 여하튼 저 모습들이 메간 폭스의 인기 비결이겠거니 하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는 1편에서의 모습이 더 멋있었다고나 할까.

트랜스포머가 재미있었던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거기에 나오는 물건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당연히 앞뒤로 확확 바뀌면서 일어나는 기계들의 모습이 으뜸일테고-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동시에 어떻게 이 부피가 저 부피로 되는걸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다가 너무도 만져 보고 싶었다- 그 외의 물건들도 몇가지. 2편에서 메간 폭스가 처음 핸드폰 통화를 할 때 들고 있던 저 핸드폰은 분명 샤인폰! 처음엔 얼핏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쪽을 보고는 확신이^^ 하지만 같이 보던 친구는 못 알아차렸다. 내 폰과 같은 기종이기 때문에 더 눈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LG 제품이 영화에 나오는 게 그리 별다른 일이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어제 안 사실 하나는 2편에서 나오는 비전사(싸움에는 전혀 능력없는 오토봇) 쌍둥이들의 모습이 마티즈의 신형이라는 것! 오렌지와 그린 두가지^^ '시보레 스파크'라는 이름의 마티즈 신형은 오토봇으로 변신하면 이런 모습이 된다. 초반에는 낡은 아이스크림차였는데 영화 초반에 모습을 바꾼다. 둘이서 치고받고 하는 콤비 플레이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트랜스포머2: 패자의 역습
한국 홈페이지: http://www.transformersmovie.co.kr/
공식 팬 블로그: http://blog.naver.com/transformers/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감독 마이클 베이 (2009 / 미국)
출연 샤이아 라보프, 메간 폭스, 조쉬 더하멜, 타이레스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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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을 것 같다던 그의 이야기에 바로 관람 결정을 하고 다음날인가 보러 가게 된 <7급 공무원>. 예매순위 1위인 때라 표가 없으면 어떡하나 했지만 역시 대전은 한산하다.
뭐니뭐니해도 로맨틱 코미디가 좋다. 김하늘의 코믹 연기는 언제나 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뻔뻔한 듯한, 그러면서도 약한 모습이 있는 김하늘은 눈을 뗄 수 없게 하고, 완전 얼빵 순진남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강지환.. 거기에 수지(김하늘)의 선배와 재준(강지환)의 보스의 역할들이 잊지 못할 영화다.


재회한 두 사람이 툭탁 거리다가 다시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한 직후의 모습. 서로 절대 거짓말 하지 말자고, 떨어지지 말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까지 찍은 후 각자 출동 명령을 받고는 바로 거짓말쟁이가 되는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Mr. & Mrs. Smith>의 경우에는 적진에 있는 상대방을 보고 서로 죽이려고 싸우다가 각자의 소속팀에서 버림 받고 나서는 융합해버리는 완전 강력한 두 사람의 액션이 화려했었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더이상 말할 수 없이 완벽한 커플! <7급 공무원>도 그런 분위기를 따라가게 되려나 했는데, 도리어 우리나라 실정-전 안기부, 국정원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있는-을 생각해보면 알고보면 같은 소속인데 보안 유지 때문에 서로의 신분을 알 수 없다는 설정이 맞는 것 같다. 그 덕분에 해프닝도 일어나지만 보는 내내 계속 해피 모드^^
 
워낙 인기인 영화라 한 번 더 보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영화럴 보러가는 것이 쉽지 않다.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몸을 일으켜 세워서 나가면 그만인데 그게 또 쉽지 않다는 것이 또 나의 딜레마.

7급 공무원
감독 신태라 (2009 / 한국)
출연 김하늘, 강지환, 장영남,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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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ector & Play: John Cameron Mitchell
Actors: Sook-Yin Lee, Linsay Beamish, Paul Dawson, PJ DeBoy


해방구랄까 돌파구랄까 성에 관한 모든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곳 shortbus. 처음 제목을 보고 그가 한 말은 "shortbus? 짧은 버스란 말야?" 설마.. 다른 뜻이 있겠지 생각했으나 처음으로 주인공들-난 여기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 같았다. 엔딩 자막의 이름 순서에서 여주인공 Sook-In Lee가 1번 주인공임을 알았지만-이 shortbus에 들어갈 때 HOST가 그냥 버스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별로 의미 없는 단어이지만 그런 이름을 가지고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 HOST와 참여자들의 능력인 것이라고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 찾아보니 보통은 그냥 Schoolbus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달리 장애가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 일반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버스가 Shortbus라고 한다. 어딘가 모자란, 남들과 다른 사람들을 비꼬는 은어라는 말인데 그 뜻을 알고 나니 더더욱 shortbus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어느 누구나 마음 속에 어둠을 담고 산다. 섹스를 좋아하고 남편을 유일한 반려라고 생각하지만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없는, 커플전문가라고 불리고 싶은 성전문가는 '여자만의 비밀 클럽'에 들어가고 싶어서 shortbus를 찾게 되고 소심한 여러 시도 끝에 결국 남편과 둘이서 해결할 수는 없음을 깨닫고 shortbus의 난교방에서 보았던 커플과 또다른 시도를 해보게 되면서 남편과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만 경제 형편상 SM플레이를 해야하는 제니퍼 애니스톤은 본명이 부끄러워서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명으로 살아야 하며, 정상적인 연애를 꿈꾸지만 정작 개목걸이에 매달린 부잣집 도련님을 데리고 다니는 현실이 싫다. 몸을 팔았던 과거가 있지만 정작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제이미에게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사랑을 되돌려줄 수 없는 제임스는 울면서 자위를 하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며 6개월간 자살 비디오를 찍고, 제이미의 다음 파트너로 삼기 위해 세스를 그들의 관계에 끌어들이고 드디어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커플의 스토커 때문에 실패한다. 열정적이지만 그만큼 상대를 작게 만드는 제이미는 제임스와의 관계를 지속해 가고 싶어하지만 '보통 남자'의 서투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파트너를 찾고 싶은 세스는 JJ커플 속에 들어가지만 그게 해결책이 아님을 분명 알고 있고 스토커 역시 JJ커플을 지켜보고 있지만 단지 그뿐이다.

Sophia는 결국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랄까 그 절정의 순간이 그녀에게는 행복한 순간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결국 다다르게 되지만 그건 '해냈다' 정도의 느낌일 뿐 만족감이라던가 그로 인해 사랑에 대한 또다른 느낌을 얻는다던가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하는 키스나, 누구나 하는 섹스나, 누구나 하는 결혼이나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결국 그래서 Sophia는 shortbus를 다시 찾게 되고 거기서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아닐까. 그 순간의 화려한 배경이 되는 허스키보이스의 HOST가 부르는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Jennifer는 Sophia의 선택을 보고 있을 뿐이고, Rob 역시 shortbus의 참여자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그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드디어 서로를 마주보게 되는 Jamie와 James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JJ커플을 바라보는 Cess와 Stalker는 만족스럽다.

개개인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거대 사건들의 몇일이었겠지만 shortbus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언제나 있어온 해프닝일 뿐이다. 그 모든 것들을 어느 정도 겪어온, 그래서 조언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HOST의 모습이 더 편안하고 솔직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결국 우리가 지켜본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을 붙잡았고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은 또 그때의 일이겠지.
 
Sophia가 개안(開眼)하는 배경은 이런 곳. 밀물이 들어와 벤치에 찰랑찰랑 물이 차오르는 그 순간에 제대로 느껴버리는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신체적으로 아찔할 만큼의 오르가즘은 얼마나 겪어내기 힘든 고통이길래 그리도 찡그린 표정으로 표현되는 걸까.

숏버스
감독 존 카메론 미첼 (2006 / 미국)
출연 숙인 리, 린지 비미시, 라파엘 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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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사람의 글은 복잡하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의 사건에서 많은 기억들을 끄집어 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증이 손에 묻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직업란에 '자전거 레이서'라고 쓰는 김훈 님의 유명한 소설들이 있지만 사실 나는 그 중 어느 것도 읽어본 적은 없다. 이 책 맨 뒤에 있는 소설 서문들을 보면서 이런 책들이 있었구나 알았을 뿐이다.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끝'이라는 마감을 하기까지 완성된 문장들로 엮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보다. 김훈 님이 기자 출신이라고 하는 사실을 책을 읽는 도중에 알게 되었는데 어쩐지 글을 마무리 하는 모양새가 좀 남다르다 생각하고 있던 중이어서 그게 납득이 가자 홀가분해지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 같은 범인은 아무래도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새 마음을 열어놓게 되는 법이라서 처음 눈이 번쩍 뜨였던 글은 <토지>의 박경리 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경리 님과 김지하 님이 장모와 사위 관계였다는 것도 몰랐었지만, 내가 읽었던 글의 작가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던 두 사람이 실제 생을 영위했고 또 그 '격변의 한국사' 중간에 서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 그 여인네의 야윈 몸으로부터 아이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이어서 여인네는 자꾸만 몸을 추슬러 아이를 끌어올렸다. 아무도 그 여인네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그 여인네는, 교도소 정문 앞에서 들끓는 그 어떤 사람과도 무관해 보였다. 그때 그 여인네는 길섶에 돋아난 풀 한 포리보다도 더 무명해보였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아무런 이유가 없는, 어떤 자연현상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등에 매달린 아이가 발이 시려우면 안될 텐데, 그런 걱정만 했다는 구절에서 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체제니, 자유니 하는 것들은 등에 업힌 아이와는 무관한 것이니 말이다.

뇌종양으로 죽은 친구의 MRI 사진을 보게 된 부분에서 사실 나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아마 병과 죽음에 대한 그 글에서 그 사진은 그리 의미가 없는 것이었던 것도 같다. 내게는 그 순간 떠올랐던 엑스레이 사진 한장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내가 본 그 엑스레이는 폐 여기저기 덩어리진 그림자가 비치는 폐암 말기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급히 찍은 그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화장실 칸막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생생한데 열달이 지나 내 아버지 같던 교수님은 돌아가셨고 그리고도 또 두 해가 흘러 두번째 기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뵈러갈 준비를 해야겠다.
이렇게 공유라고 할 것도 아닌 것에서 혼자 공통분모를 찾고, 혼자 감동하는 이기적인 독자인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찾듯이 글을 읽어내려갔다. 지두화를 그리는 오치균 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림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해금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서 해금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지를 않나, <칼을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품성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시골 할머니댁 가는 입구에 있는 이락사에 가봤던 기억을 더듬다가, <난중일기> 해서본은 어떻게 구할 수 있나라고 생각하지 않나,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에 대한 심각한 글을 보면서 그래도 요새 초등학생들은 한문 잘하니까 잘 되지 않을까 혼자서 납득하고 있지를 않나, <자전거 여행> 서문에서 자전거 할부금에 대한 우스개소리를 보면서 김훈 님이 레이서로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내 지인을 통해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지를 않나, 그런 식으로 나는 내가 보고 싶은데로 이 책을 읽어'재껴버렸'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다의 기별>은 공유하는 경험들을 발견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 해금 연주자는 한 손으로는 활을 쥐고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뽑아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줄을 통째로 쥐었다 폈다 눌렀다 풀었다 하면서 소리를 가지고 논다. 모든 현악기 중에서 해금은 인간의 육체에 가장 가깝고, 육체의 떨림이 선율 속에 살아있다. 해금의 음색은 가지런하지 않고 많은 음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 선율은 많은 불협화음들을거느린 것처럼 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한개의 음이 그 음 주변의 다른 음을 이끌고 나가면서 음들은 부딪치고 또 명멸한다. 해금 연주자는 손아귀로 줄을 쥘 때 소리의 진동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해금에서는 몸의 소리, 몸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가 나온다. 해금의 소리는 주물러서 나오는 소리다. 그 소리는 가까운 것들을 멀리 밀쳐내고 먼 것들을 가까이 불러들인다. 해금의 소리는 놀리적이지 않고 아정하지 않지만,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로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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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부부라는 이름의 가족이고, 또 두 사람은 그것이 운명인 줄 알고 살아온 연인이고, 또 두 사람은 원래 소원한 관계였지만 어느 순간 떨어지기 힘든 애인이 되어버렸다. 서로 존중하는 부부였지만 남녀간의 애틋함은 없었기 때문에 공주는 홍림을 정인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 건낸 수 놓인 파란 두건과 쌍화병은 홍림에게는 생전 처음 느낀 여자의 고마운 마음이었겠다. 왕의 전폭적인 애정은 홍림에게는 마치 운명처럼, 살아온 인생 내내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었지만, 받는 것이 당연하고 섬기는 것도 당연한 그 진실은 새로운 여인의 등장으로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홍림이 왕에게 무릎꿇고 사죄할 때 말했던 것처럼 한순간의 욕망에 흔들려버렸다는 표현은 사실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바보들이 그렇듯이, 막상 손에 쥐어진 행복은 어느새 너무도 익숙해져버려서 그 가치가 흐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은 홍림을 버리고 싶지 않고, 공주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될지라도 홍림과 떠나서 둘이서 살고 싶고, 홍림은 그래도 더욱 소중한 왕을 선택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비내리고 천둥이 치던 그날밤 홍림이 남자로서 책임져야 함을 알게 되고나서 왕이 아닌 사람을 마음에 둘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해버린 홍림 때문에 다시 마지막으로 치닫게 되어버린다. 끝끝내 홍림을 놓고 싶지 않은 왕은 위험한 카드를 내게 되고, 홍림은 왕이 선택한-실제로는 그렇게 보이게끔 한 왕의 카드에 넘어가는 거지만- 잘못을 간과할 수가 없어서 왕에게 칼을 뽑아든다. 홍림은 복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잘못된 선택을 한 왕을 모른척 할 수가 없어서 다시 왕이 있는 성으로 돌아간다. 왕은 홍림을 기다리고 있고, 결국 홍림은 왕과 함께 죽는 길을 택한다. 그 순간 호위병을 뚫고 나타난 공주의 모습을 보고 왕이 실제로는 공주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편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홍림이 죽기 직전 공주를 향하던 얼굴을 반대로 돌려 왕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던 모습은 홍림이 왕에게 기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애정이란 그렇게 순서를 매기기 쉬운 일이 아니다. 공주에게는 지아비인 왕과 남자로서 자신의 애정을 받아주고 또한 바라마지않던 후사를 잉태하게 해준 정인인 홍림이, 왕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부인인 공주와 건륭위가 생기던 때부터 보살펴오며 자신의 일부라 믿어마지 않던 유일한 사랑인 홍림이, 홍림에게는 각인처럼 자신의 운명인 줄 믿고 따랐던 왕과 그 왕을 보호하기 위해 품게 되었지만 어느새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 공주가 있었다. 그 모든 애정들의 크기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 살 수도 없지만 자신의 환경을 등지고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야 그들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산성 없는 감정과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을 통해 지극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세 사람에게, 또 이 영화를 만든 유하 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친구들과 <쌍화점>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들도 그렇고 여기저기 블로그의 글들도 왕이 홍림을 그렇게도 사랑하는데 홍림은 정작 공주(왕비)를 사랑해서 불쌍하다고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난 홍림이 왕을 사랑했다고 믿고 싶다. 사랑은 이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그 영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니까 홍림에게는 왕도 공주도 사랑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홍림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두 사람 모두를 마음 속으로 그리며 눈 감았을 것이다.

블로그 구경을 하다가 클레이로 만든 귀여운 왕과 홍림이 있어서 사진을 복사해왔다.
출처는 딸기소보루의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rhksgn/110040412045)
쌍화점
감독 유하 (2008 / 한국)
출연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심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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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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