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부부라는 이름의 가족이고, 또 두 사람은 그것이 운명인 줄 알고 살아온 연인이고, 또 두 사람은 원래 소원한 관계였지만 어느 순간 떨어지기 힘든 애인이 되어버렸다. 서로 존중하는 부부였지만 남녀간의 애틋함은 없었기 때문에 공주는 홍림을 정인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 건낸 수 놓인 파란 두건과 쌍화병은 홍림에게는 생전 처음 느낀 여자의 고마운 마음이었겠다. 왕의 전폭적인 애정은 홍림에게는 마치 운명처럼, 살아온 인생 내내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었지만, 받는 것이 당연하고 섬기는 것도 당연한 그 진실은 새로운 여인의 등장으로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홍림이 왕에게 무릎꿇고 사죄할 때 말했던 것처럼 한순간의 욕망에 흔들려버렸다는 표현은 사실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바보들이 그렇듯이, 막상 손에 쥐어진 행복은 어느새 너무도 익숙해져버려서 그 가치가 흐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은 홍림을 버리고 싶지 않고, 공주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될지라도 홍림과 떠나서 둘이서 살고 싶고, 홍림은 그래도 더욱 소중한 왕을 선택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비내리고 천둥이 치던 그날밤 홍림이 남자로서 책임져야 함을 알게 되고나서 왕이 아닌 사람을 마음에 둘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해버린 홍림 때문에 다시 마지막으로 치닫게 되어버린다. 끝끝내 홍림을 놓고 싶지 않은 왕은 위험한 카드를 내게 되고, 홍림은 왕이 선택한-실제로는 그렇게 보이게끔 한 왕의 카드에 넘어가는 거지만- 잘못을 간과할 수가 없어서 왕에게 칼을 뽑아든다. 홍림은 복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잘못된 선택을 한 왕을 모른척 할 수가 없어서 다시 왕이 있는 성으로 돌아간다. 왕은 홍림을 기다리고 있고, 결국 홍림은 왕과 함께 죽는 길을 택한다. 그 순간 호위병을 뚫고 나타난 공주의 모습을 보고 왕이 실제로는 공주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편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홍림이 죽기 직전 공주를 향하던 얼굴을 반대로 돌려 왕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던 모습은 홍림이 왕에게 기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애정이란 그렇게 순서를 매기기 쉬운 일이 아니다. 공주에게는 지아비인 왕과 남자로서 자신의 애정을 받아주고 또한 바라마지않던 후사를 잉태하게 해준 정인인 홍림이, 왕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부인인 공주와 건륭위가 생기던 때부터 보살펴오며 자신의 일부라 믿어마지 않던 유일한 사랑인 홍림이, 홍림에게는 각인처럼 자신의 운명인 줄 믿고 따랐던 왕과 그 왕을 보호하기 위해 품게 되었지만 어느새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 공주가 있었다. 그 모든 애정들의 크기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 살 수도 없지만 자신의 환경을 등지고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야 그들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산성 없는 감정과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을 통해 지극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세 사람에게, 또 이 영화를 만든 유하 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친구들과 <쌍화점>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들도 그렇고 여기저기 블로그의 글들도 왕이 홍림을 그렇게도 사랑하는데 홍림은 정작 공주(왕비)를 사랑해서 불쌍하다고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난 홍림이 왕을 사랑했다고 믿고 싶다. 사랑은 이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그 영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니까 홍림에게는 왕도 공주도 사랑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홍림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두 사람 모두를 마음 속으로 그리며 눈 감았을 것이다.

블로그 구경을 하다가 클레이로 만든 귀여운 왕과 홍림이 있어서 사진을 복사해왔다.
출처는 딸기소보루의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rhksgn/110040412045)
쌍화점
감독 유하 (2008 / 한국)
출연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심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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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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