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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냄새

書/Article 2010. 1. 14. 17:15

냄 

신동엽

 

 두 연인(戀人)은 걸었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 밤거리다. 외투 깃을 세워도 세워도 저녁내 걸은 두 사람의 피곤한 몸은 으스스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다방이나 홀에서 시간을 보내기엔 그들의 취미가 높았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 안의 수런수런한 말소리를 들으며 두 사람은 똑같이 그들에겐 언제 저런 따뜻한 그들만의 방(房)이 마련될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 음식점 앞에서였다. 문득 그는 말했다.

“그 냄새 참 구수한데“

여인은 살짝 웃으며 외투 속의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 끌었다. 두 사람은 다시 도란도란 그들의 인생을 의논하며 사라져 갔다.

한 겨울 밤.

거리에서 맡은 구수한 내음.

허기진 젊은이의 미각(味覺)을 잡아당긴 그 내음의 의미(意味)는 순수(純粹)하다.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만 그것으로 족하다.

질리도록 코를 박고 먹어 버렸으면 삼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두 사람의 가슴에 그 내음이 그리도 그리웁게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의 인생은 한 고비 넘었다. 그렇게 부러워하던 다스운 불빛이 새어 나오는 그들만의 방(房)에서, 오늘은 그들의 어린것의 재롱을 웃어가며 수런수런 인생을 밤알처럼 익혀가고 있다.

책상 앞 벽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는 문득 이런 말을 했다.

“그날 밤, 그 어느 음식점 속에서 새나오던 그런 냄새나는 찌개 좀 끓여 보우“

여인(女人)은 그날 밤처럼 그저 빙긋 웃을 뿐이다.

 

그녀는 생각한다.

여학교(女學校) 시절, 교정 라일락 꽃나무 밑에서 맡은 짙은 꽃 내음, 뒷동산에서 어린 시절에 맡은 들국화의 은은한 향기. 꽃 가게에서 맡은 장미꽃의, 젊음을 뇌살시킬 듯한 농향(濃香). 이런 것은 다 잊을 수 없다.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서정시(抒情詩)처럼 이따금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

그러나 냄새도 인생과 함께 자란다. 이제 그녀의 손엔 어린것의 기저귀 냄새와 살림살이를 거두는, 여인(女人)들의 손에 풍기는 시큼한 냄새가 배어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들국화나 라일락 냄새에서 피워 보던 꿈보다 그녀의 손으로 주물러 감각하는 이 시큼한 냄새에서 더 큰 꿈의 현실을 맛보며 즐거워할 것이다.

여인(女人)은 땀에 젖은 남자의 가슴에, 남자는 냄새 풍기는 여인(女人)의 머리칼에 각각 하루의 피곤을 묻고 행복에 젖는 것이다.


그는 생각한다. 옆을 지나가는 여인(女人)의 분(粉)냄새에서 여성(女性)을 그리워하던 젊은 시절은 얼마나 철없는 시절이었던가 하고. 그는 이제 값비싼 인공향료(人工香科)가 혐기(嫌忌)스러워진 자신을 느낀다. 변소에까지 수도를 놓고 닦아내는 서양인(西洋人)들의 인생은 얼마나 무미한가. 닦고 또 닦고, 香科와 크림으로 체취(體臭)를 위장하려는 인생은 얼마나 위선적(僞善的)인가.

어린것의 요에서 풍기는 비릿한 지린내에서 부성애(父性愛)의 극치(極致)를 체험한다.

땀에 절은 지겟군의 담배 쌈지에서 풍겨오는 체취(體臭), 흙 속에서 생생하게 올라오는 우주의 향취, 그러나 무엇보다도 밤에, 발랄한 그들의 젊음을 태우는 性의 내음은 아름다운 향기의 王子가 아니랴. 냄새는 인생과 함께 무르익는다.

바닷가에 가 보았는가. 비린내를 풍기를 바다의 내음은 억만년(億萬年) 말없이 일하는 그들의 땀내가 아닐까. 바다는 스스로 닦는 일이 없다. 바다는 스스로 화장하는 일이 없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도 바다처럼 인간(人間)의 내음을 한 껏 피우며 살자'고 두 사람은 속삭인다.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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