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 Play: John Cameron Mitchell
Actors: Sook-Yin Lee, Linsay Beamish, Paul Dawson, PJ DeBoy


해방구랄까 돌파구랄까 성에 관한 모든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곳 shortbus. 처음 제목을 보고 그가 한 말은 "shortbus? 짧은 버스란 말야?" 설마.. 다른 뜻이 있겠지 생각했으나 처음으로 주인공들-난 여기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 같았다. 엔딩 자막의 이름 순서에서 여주인공 Sook-In Lee가 1번 주인공임을 알았지만-이 shortbus에 들어갈 때 HOST가 그냥 버스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별로 의미 없는 단어이지만 그런 이름을 가지고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 HOST와 참여자들의 능력인 것이라고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 찾아보니 보통은 그냥 Schoolbus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달리 장애가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 일반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버스가 Shortbus라고 한다. 어딘가 모자란, 남들과 다른 사람들을 비꼬는 은어라는 말인데 그 뜻을 알고 나니 더더욱 shortbus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어느 누구나 마음 속에 어둠을 담고 산다. 섹스를 좋아하고 남편을 유일한 반려라고 생각하지만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없는, 커플전문가라고 불리고 싶은 성전문가는 '여자만의 비밀 클럽'에 들어가고 싶어서 shortbus를 찾게 되고 소심한 여러 시도 끝에 결국 남편과 둘이서 해결할 수는 없음을 깨닫고 shortbus의 난교방에서 보았던 커플과 또다른 시도를 해보게 되면서 남편과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만 경제 형편상 SM플레이를 해야하는 제니퍼 애니스톤은 본명이 부끄러워서 남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명으로 살아야 하며, 정상적인 연애를 꿈꾸지만 정작 개목걸이에 매달린 부잣집 도련님을 데리고 다니는 현실이 싫다. 몸을 팔았던 과거가 있지만 정작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제이미에게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사랑을 되돌려줄 수 없는 제임스는 울면서 자위를 하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며 6개월간 자살 비디오를 찍고, 제이미의 다음 파트너로 삼기 위해 세스를 그들의 관계에 끌어들이고 드디어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커플의 스토커 때문에 실패한다. 열정적이지만 그만큼 상대를 작게 만드는 제이미는 제임스와의 관계를 지속해 가고 싶어하지만 '보통 남자'의 서투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파트너를 찾고 싶은 세스는 JJ커플 속에 들어가지만 그게 해결책이 아님을 분명 알고 있고 스토커 역시 JJ커플을 지켜보고 있지만 단지 그뿐이다.

Sophia는 결국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랄까 그 절정의 순간이 그녀에게는 행복한 순간처럼 보이지가 않는다. 결국 다다르게 되지만 그건 '해냈다' 정도의 느낌일 뿐 만족감이라던가 그로 인해 사랑에 대한 또다른 느낌을 얻는다던가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하는 키스나, 누구나 하는 섹스나, 누구나 하는 결혼이나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결국 그래서 Sophia는 shortbus를 다시 찾게 되고 거기서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아닐까. 그 순간의 화려한 배경이 되는 허스키보이스의 HOST가 부르는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Jennifer는 Sophia의 선택을 보고 있을 뿐이고, Rob 역시 shortbus의 참여자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그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드디어 서로를 마주보게 되는 Jamie와 James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JJ커플을 바라보는 Cess와 Stalker는 만족스럽다.

개개인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거대 사건들의 몇일이었겠지만 shortbus에서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언제나 있어온 해프닝일 뿐이다. 그 모든 것들을 어느 정도 겪어온, 그래서 조언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HOST의 모습이 더 편안하고 솔직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결국 우리가 지켜본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행복을 붙잡았고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은 또 그때의 일이겠지.
 
Sophia가 개안(開眼)하는 배경은 이런 곳. 밀물이 들어와 벤치에 찰랑찰랑 물이 차오르는 그 순간에 제대로 느껴버리는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신체적으로 아찔할 만큼의 오르가즘은 얼마나 겪어내기 힘든 고통이길래 그리도 찡그린 표정으로 표현되는 걸까.

숏버스
감독 존 카메론 미첼 (2006 / 미국)
출연 숙인 리, 린지 비미시, 라파엘 바커
상세보기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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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hush-hush

書/Word 2009. 3. 18. 09:19
형용사. 비밀스럽게 몰래 진행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것. secret이나 confidential과 같은 표현.

My boyfriend wants to keep our relationship hush-hush.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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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B Cyon SB630 액정 바깥의 보호 창이라고 해야하는지 정확히 명명하기 힘든 부분인데, 그게 깨졌다.. 실금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고 있어서 a/s 받으려고 lg 홈페이지로..
a/s 센터 위치를 찾은 후에 첫 페이지에 보니 a/s 예약이 있길래 들어가봤더니 장소, 시간, 담당자까지 지정하는 서비스가 있어서 바로 신청. 이렇게 신청하지 않으면 또 한주 미뤄질 것 같았다. 이제 내일 늦지 않게 일어나 가는 일만 남았다.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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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pasto: 샐러드 (시저, 또 하나)
Menu: 베이컨 알프레도, 폴로 알프레도, 링귀니 프리마베라, 칭기엘리, 봉골레, 리조또 폴로

<Antinori Vino Nobile de Montepulciano La Braccesca>
생산자: Antinori, Spain Toscana
Appellation: Vino Nobile de Montepulciano DOCG
빈티지 2004 (대유 와인), 13.5도
Sangiovese 80%, Others 20%
→ 선명한 루비빛, 복잡하지 않은 맛, 깔끔하나 혼자 먹긴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다.
→ 1990년 첫 빈티지 후 꾸준히 사랑받는 와인이라고..

<Antinori Villa Antinori Bianco>
생산자: Antinori, Spain Toscana
Appellation: Toscana IGT
빈티지 모름, 12도
Trebbiano & Malvasia 70%, Chardonnay & Pinot Bianco 30%
→ 깔끔한 맛이며 달지 않은 특징. Red Wine을 마신 후라 약간 싱거움이 남는 것도 같다. 같은 자리에 앉으신 송박사님께서는 캔달 잭슨 화이트가 났다는 평.
→ 풍부한 꽃향기와 투명한 녹색빛이 어린 황금색 화이트 와인이라고..

2009/02/26 - [飮食/Wine] - [생산자] Antinori, Italy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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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와인의 최고 명가이자 가장 넓은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는 Antinori Wine을 두병 만날 수 있었다. Vino Nobile di Motepulciano La Braccesca, Villa Antinori Bianco..
WineFinder에서 찾은 Antinori가에 대한 정보로는 한 대도 끊기지 않고 꾸준히 와인 제조를 계속해왔다는, 우리나라로 치면 종가집 수준의 와인 명가라는 것이었다. 또한 Solaria가 이태리 와인 사상 최초로 미국의 와인 전문 잡지 Wine Spectator 100대 와인의 1위를 했다는 것. 700년간 26대를 이어온 가문의 진정한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태리 와인은 가장 긴 생산 역사에 걸맞게 전 세계 생산량 1위의 나라이지만 고품질 와인의 생산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태리 와인이라고 하면 바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끼안띠 하나의 이미지로 버텨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안티노리 가문을 필두로 피에몬테 지방의 안젤로 가야 같은 인물들이 국제정 인정을 받은 품종의 재배, 고유 품종과의 혼합, 양조 과정과 숙성 과정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통해서 이태리 와인의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태리 사람들도 늘 와인을 생활화 하고 있기 때문에 양적 성장률은 유지될 수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실제로 그 구매자 수가 적을지라도- 좋은 고급 와인이 필요하게 된 현 시점에서 Solaria의 대성공은 우쭐할 수 밖에 없었을 터였다.
Antinori가문은 현재 25대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과 26대 세 딸들이 이어가고 있다. 안티노리 가문은 토스카나 지방 외에도 피에몬테, 롬바르디아, 움브리아, 폴리아 지방을 아우르는 넓은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 나파밸리의 아틀라스 피크, 워싱턴 주의 콜 솔라레, 헝가리 파타비티, 몰타의 메리디아나, 칠레의 알바 클라라와 알비스를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수퍼 토스카나 와인이라고 불리는 와인들이 있는데 Tignanello(1971년 빈티지 시작)를 그 시작으로 한다. 유명한 포도품종인 Carbernet Sauvignon을 토종 포도 품종과 혼합하고 프랑스 오크통을 도입하여 와인의 맛과 향기, 무게감을 더해서 세계 수준의 와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Daum 닥터뱅의 블로그에 안티노리 와인들에 대한 리스트가 있어서 적어본다. 언젠가는 수퍼 토스카나를 먹어보리라, 또 언젠가는 Cantinetta Antinori에 가서 토스카나 전통 요리와 함께 와인을 마셔보리라. 특히 피렌체에 있는 곳에 가봐야지, 염소치즈와 트뤼프를 먹어야지.

1. 수퍼 토스카나
  : 솔라리아 Solaria
  : 구아도 알 타소 Guado Al Tasso Bolgheri Superiore
  : 티냐넬로 Tignanello
2. 토스카나
  : 피안 델레 비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Pian delle Vigne Bruneollo de Montalcino
  : 라 브라체스카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 La Braccesca Vino Nobile di Montepulciano
  : 페폴리 키안티 클라시코 Peppoli Chianti Classico
  : 빌라 안티노리 로쏘 Villa Antinori Rosso
  : 빌라 안티노리 화이트 Villa Antinori Bianco
  : 베르멘티노 Vermentino
3. 움브리아
  : 오르비에토 클라시코 Compogrande Orvieto Classico
  : 카스텔로 델라 살라 샤르도네 Castello della Sala Chardonnay
4. 피에몬테
  : 부시아 바롤로 Bussia Barlo
  : 프루노토 바롤로 prunotto Barolo
  : 프루노토 바르바레스코 Prunoto Barbaresco
  : 모스카도 다스티 Moscato d'Asti
5. Specialty
  : 그라파 티냐넬로 Grappa Tignanello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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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어디를 향해 가더라도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것을 발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자기 자신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사람은
다른 존재들은 해치지 않는다.

- 임현당의 <강 린포체> 중에서-


자기애가 너무 강하면 그 또한 문제겠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면 적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내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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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 곁으로 무사히 돌아와줘서 기뻐~ 나의 LUMI~~
2006년 운좋게 내 손에 들어온 이래로 늘 내 곁을 지키다가 작년 싱가폴 동물원에서 떨어뜨린 것이 문제가 되어 고장이 날 중이야!! 그래도 고생해서 고쳤으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써야겠다.
이번에 고친 부분은 렌즈 경통 찌그러진 부분 펴기, 메인보드 교환. 경통 찌그러진 부분과 조리개 부분 수리에 48000원을 지불하였는데, 그후에 다시 문제가 생겨서 메인보드를 신품으로 교환해야되게 생겨서 친절한 A/S 센터 직원분이 원가로 처리해주어 총 금액 85000원으로 수리가 다 끝났다. LUMI는 내가 운좋게 행운경매를 통해서 2046원으로 구한 아이인데 사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되긴 했지만 콤팩트 형으로는 이만큼 맘에 드는게 없는걸~ 꽤 예전 모델임에도 SDHC 메모리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기특함^^ 쓰면서 아쉬운 것은 동영상 촬영시 줌 변경이 안된다는 것 정도일까? 내 마음 속의 일등은 아무래도 LUMI 되겠다.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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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영어 공부를 할 때 영어 사전에서 제일 긴단어가 무엇인지 찾는 게임 같은 것을 했던 그 때는 제대로 읽을 수도 없는 그 진폐증이라는 단어의 존재를 안다는 것만으로 으쓱했었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그 단어는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다)

저 주문과도 같은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는 <메리 포핀스>의 '기분 좋아지는 주문'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크게 외치면 즐거워진다는 말, 말하는 걸 겁내던 버트의 두려움을 없애주었던 위대한 단어이자 인생이 바뀌게 되는 주문. 거꾸로 말하면 docious-ali-expi-istic-fragi-cali-repus라고 읽은 이 단어는 내가 참 좋아하는 쥴리 앤드류스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말하는 발음으로 들었기에 더욱 주문처럼 다가온다.


작곡자인 리처드와 로버트 셔먼이 이 단어를 만드는 데 꼬박 2주가 걸렸다고 한다. 좋은 말들을 합쳤다는 이 단어는 super-"above", cali-"beauty", fragilistic-'delicate',expiali='to atone',docious-'educable'의 의미를 가지며 합치면 'Atoning for educability through delicage beauty'라고 표현할 수 있다. 원래 <메리 포핀스>의 내용이 정말 말 안듣는 두 아이의 보모로 나타난 너무도 재미있는 메리 포핀스 덕분에 아이들이 본래의 착한 마음을 드러내며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된다는 이야기인 것을 생각하면 섬세하고 아름다운 메리 포핀스 덕분에 아이들이 제대로 본분인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반성을 하게 된다라고 보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위키피디아를 좀 뒤져보면 <메리 포핀스>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10년, 이 단어를 1964년 월트 디즈니사에서는 "what you say when you don't know what to say"라고 정의 했다고 한다. 1942년 영화 <The Undying Monster>에서 'supercalifragilis'라는 말이 나오는 데 이는 원작 소설(1936)에는 없는 단어이며 영화에서는 '여자의 직감'이라고 정의되었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할 말이 따로 없을 때, 우울할 때,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때, 언제고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은 말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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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사람의 글은 복잡하다.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의 사건에서 많은 기억들을 끄집어 낸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증이 손에 묻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직업란에 '자전거 레이서'라고 쓰는 김훈 님의 유명한 소설들이 있지만 사실 나는 그 중 어느 것도 읽어본 적은 없다. 이 책 맨 뒤에 있는 소설 서문들을 보면서 이런 책들이 있었구나 알았을 뿐이다.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끝'이라는 마감을 하기까지 완성된 문장들로 엮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보다. 김훈 님이 기자 출신이라고 하는 사실을 책을 읽는 도중에 알게 되었는데 어쩐지 글을 마무리 하는 모양새가 좀 남다르다 생각하고 있던 중이어서 그게 납득이 가자 홀가분해지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나 같은 범인은 아무래도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금새 마음을 열어놓게 되는 법이라서 처음 눈이 번쩍 뜨였던 글은 <토지>의 박경리 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경리 님과 김지하 님이 장모와 사위 관계였다는 것도 몰랐었지만, 내가 읽었던 글의 작가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던 두 사람이 실제 생을 영위했고 또 그 '격변의 한국사' 중간에 서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 그 여인네의 야윈 몸으로부터 아이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이어서 여인네는 자꾸만 몸을 추슬러 아이를 끌어올렸다. 아무도 그 여인네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그 여인네는, 교도소 정문 앞에서 들끓는 그 어떤 사람과도 무관해 보였다. 그때 그 여인네는 길섶에 돋아난 풀 한 포리보다도 더 무명해보였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아무런 이유가 없는, 어떤 자연현상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등에 매달린 아이가 발이 시려우면 안될 텐데, 그런 걱정만 했다는 구절에서 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체제니, 자유니 하는 것들은 등에 업힌 아이와는 무관한 것이니 말이다.

뇌종양으로 죽은 친구의 MRI 사진을 보게 된 부분에서 사실 나는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아마 병과 죽음에 대한 그 글에서 그 사진은 그리 의미가 없는 것이었던 것도 같다. 내게는 그 순간 떠올랐던 엑스레이 사진 한장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내가 본 그 엑스레이는 폐 여기저기 덩어리진 그림자가 비치는 폐암 말기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급히 찍은 그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화장실 칸막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생생한데 열달이 지나 내 아버지 같던 교수님은 돌아가셨고 그리고도 또 두 해가 흘러 두번째 기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으니 뵈러갈 준비를 해야겠다.
이렇게 공유라고 할 것도 아닌 것에서 혼자 공통분모를 찾고, 혼자 감동하는 이기적인 독자인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찾듯이 글을 읽어내려갔다. 지두화를 그리는 오치균 님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림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해금에 대한 설명에 푹 빠져서 해금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지를 않나, <칼을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순신 장군님의 품성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시골 할머니댁 가는 입구에 있는 이락사에 가봤던 기억을 더듬다가, <난중일기> 해서본은 어떻게 구할 수 있나라고 생각하지 않나,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에 대한 심각한 글을 보면서 그래도 요새 초등학생들은 한문 잘하니까 잘 되지 않을까 혼자서 납득하고 있지를 않나, <자전거 여행> 서문에서 자전거 할부금에 대한 우스개소리를 보면서 김훈 님이 레이서로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내 지인을 통해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지를 않나, 그런 식으로 나는 내가 보고 싶은데로 이 책을 읽어'재껴버렸'나보다. 하지만 이렇게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바다의 기별>은 공유하는 경험들을 발견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 해금 연주자는 한 손으로는 활을 쥐고 줄을 문질러서 소리를 뽑아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줄을 통째로 쥐었다 폈다 눌렀다 풀었다 하면서 소리를 가지고 논다. 모든 현악기 중에서 해금은 인간의 육체에 가장 가깝고, 육체의 떨림이 선율 속에 살아있다. 해금의 음색은 가지런하지 않고 많은 음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그 선율은 많은 불협화음들을거느린 것처럼 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한개의 음이 그 음 주변의 다른 음을 이끌고 나가면서 음들은 부딪치고 또 명멸한다. 해금 연주자는 손아귀로 줄을 쥘 때 소리의 진동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몸의 리듬으로 소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해금에서는 몸의 소리, 몸의 리듬에 가까운 소리가 나온다. 해금의 소리는 주물러서 나오는 소리다. 그 소리는 가까운 것들을 멀리 밀쳐내고 먼 것들을 가까이 불러들인다. 해금의 소리는 놀리적이지 않고 아정하지 않지만,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로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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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배우는 프로필이 이쁘네"
티비를 보던 친구가 한마디 한다. 프로필? 프로필 사진의 프로필? profile이라고 쓰면 그건 횡단면이잖아. 얼굴에서는 어떤 단면을 이야기 하는 걸까..
성형외과에서 정의하는 profile은 옆모습이다. 정면에서 보는 앞모습은 outline이라고 한다.
쌍꺼풀이 짝짝이다, 입매가 단정다, 눈썹산이 부드럽다 등은 아웃라인을 보고 하는 이야기이고, 앞이마가 짱구다, 콧대가 곧다, 입이 나왔다 등은 프로필을 보고 하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웃라인과 프로필을 동시에 고려해야 미학적으로 이쁜 얼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 사람의 얼굴을 그려보려고 하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구슬과 별이 가득 들어있는 눈에, 끝이 찔릴만큼 뾰족한 코에, 입술선이 분명한 입까지, 그려놓고 나면 이게 무언가 싶을 때가 많다. 실사로 그려보는 거야 싶어서 거울을 들여다 보면 더 막막하다.  이마는 네모나고, 코는 뭉툭한데다 입술은 주름이 가득이고 게다가 작고, 눈은 너무 작고, 쌍꺼풀은 짝짝이이고, 볼은 빵빵하고, 피부에는 반점도 있고 자잘한 점은 더 많고, 머리카락은 부스스하다. 그리는 면적을 줄이려고 사진기로 프로필을 찍어본다. 자신의 옆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보다 콧대가 곧지 않다. 중간에 꺾여있고 코끝은 어색하게 둥글다. 이마에서 눈썹까지의 모양도 곡선이 아니다. 게다가 충격적으로 입이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나마 턱이 안튀어나온 것이 고마울 정도이다.
어차피 성형수술할 능력은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없으니 그나마 지금 얼굴에서 더 미워지지 않게 노력해야겠다. 틈틈히 프로필도 신경쓰면서 말이다.
Posted by 향여우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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