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일요일 저녁. 집에 돌아와 티비를 틀자마자 이선희의 모습이 나타났다.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라고 다들 이야기하지만 난 이 분이 세월을 지내면서 더 편안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침 부르고 있던 노래는 <인연(동녘바람)>이었다. 음의 흐름에 귀기울이게 되고 가사를 제대로 몰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반복재생을 하게 되는 곡이다. 드라마 <다모>를 보면서 만들었다는 이 곡은 <왕의 남자> OST에 포함되었다.

인 연

약속해요 이 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모든 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걸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께요

취한 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대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 건 없으니까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
먼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 생애 못한 사랑 이 생애 못한 인연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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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는 제야 음악회에 참석하지 않고 한 해의 마무리를 조용히 보냈었다. 2009년의 시작은 좀더 활기차게 하고 싶어서 지난 주말 예약해둔 신년 음악회. 솔직히 아주 큰 기대를 하고 갔다기 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고 싶은 생각이었다.

공연을 2층에서 본 것은 몇년만의 일인 것 같은데, 거기서는 또 소리의 느낌이 다르다. 눈앞의 첼로통의 울림이 바로 내게 다가오는 것과 같은 생생함이 아니라 음악홀 전체가 울려서 내게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다. 큰형부가 예전에 2층 앞에서 듣는 소리가 더 좋더라 했던 이야기가 이런 건가 싶다. 1부에서는 다행히 앞두줄의 사람이 없어서 더 편하게 봤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릴 때부터 공연장을 찾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이 애들에게 좋을지 나쁠지는 난 잘 모르겠다. 분명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그 공연들의 내용은 기억이 거의 안나지만 공연장의 시끌시끌한 분위기는 기억이 난다. 그 때문에 공연을 보러가도 지겹거나 다른 사람들이 신경이 쓰이거나 하는 것은 덜한 것 같지만 그래도 뒷자리의 사람이 본의던 본의가 아니던 앞좌석을 건드리는 건 영화관에서보다 공연장에서 좀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 어제는 어찌된 일인지 1부에서는 조용하더니 2부에서 뒷자리의 움직임이 커지다가 의자를 툭툭 치기를 몇번.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뒤돌아봤더니 친구끼리 온 두사람이 장난치다가 실수한 것 같은 분위기길래 그냥 바로 앉았다.


느긋하게 음악감상하러 온 목적이 강해서 오페라글래스를 갖고 갔지만 그리 열심히 보지는 않았다. 위 사진은 신년음악회 페이지의 사진이지만 이번 공연의 편성은 아닌 듯 하다. 게다가 지휘자가 아시모프인 것을 보니 다른 정기 연주회의 연습 사진이 아닐까.

서현석 지휘자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상임으로 국내 활동이 활발한 지휘자다. 언뜻 내가 알고 있는 분과 많이 닮아서 재밌었다. 공연 내내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레>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관악기의 빽빽거림이 확실히 약하지만 듣기에는 좀 더 마음이 편하달까,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는 부분이 나오니 반가웠다. 두번째 곡은 <캔디드 서곡>이었는데 작곡자로보다 지휘자로 더 유명한 레너드 번스타인의 작품이다. 그러고보니 첫번째 공연곡 <보통사람을 위한 팡파레>의 작곡자인 아론 코플랜드와 번스타인은 친구사이이기도 했다. 번스타인은 말러 교향곡 지휘로 명성을 얻었고, 꽤나 재미있는 지휘 스타일로 관심을 받았고, 또 복잡한 연애관계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모든 경험들이 그 사람의 예술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만 어떤 식으로 승화시키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얼만큼 반짝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예술의 세계란 너무도 인과관계가 모호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두 곡이 끝났다.


다음 곡은 유명한 <Zigeunerweisen>이다. 집시 음악은 반음계가 두개나 포함된 오음계로 구성된다는 해설자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음계도 역시 오음계로 이루어져있고 그 때문에 태평소 소리나 해금 소리 같이 악기 자체의 소리로 알아차리기 전에 우리나라 음악임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는 말인 것 같다. 솔리스트 이지화의 금색 드레스가 눈에 확 들어왔다. 프로필 사진이 도리어 우울해보일 정도로 무대 위에서 그녀는 활기차 보였고 바이올린의 소리도 멋있었다. 활로 켜는 것과 동시에 새끼 손가락으로 마지막 현을 튕겨주는 기교도 훌륭히 해내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9분 가까이의 연주 시간이 금방 흘러가 버렸다.
1부의 남은 세곡은 슈트라우스 2세의 곡. <트리치-트리치>, <사냥>에서는 '팡!'하는 소리를 폭죽으로 대신했는데 심벌즈 연주자가 폭죽 담당이었다. 폭죽에서 색색깔 리본이 터져나오고 앞 자리의 트럼본 연주자가 뒤로 밀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냥의 마지막 부분의 총소리대신 폭죽을 두개 동시에 터트리려고 준비했던 연주자가 세상에나! 실패를 해버렸다. 그 전의 폭죽들과 좀 다른 모양이길래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쉬웠달까, 조금 당황하는 모습이 재밌었달까. <박쥐 서곡>이 끝나고는 인터미션이었다.

오페라로 유명한 로시니의 오페레타 <비단사다리>의 서곡은 연주 내내 오보에의 현란한 연주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다메 칸타빌레와 베토벤 바이러스 이후로 오보에 연주자의 이미지가 강직함으로 쏠리고 있었는데 이 연주자는 그 느낌을 확 깨버리면서 약간 느끼한 오보이스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정말 다른 쪽을 보다가도 눈길을 확 끄는 오보에 소리를 들으니 1부에서 살짝 피콜로에 마음이 쏠렸던 것을 취소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다음 곡은 한국 작곡자의 환상곡<오호타령>이었다. 왠지 <한오백년>의 주제를 이용한 곡 같은 느낌이었는데 클라리넷을 베이스로 한 오보에의 선율이 대금류를 대신하는 느낌이었다. 오케스트라에 큰 징 같은 악기가 있는데 울리고 나면 뒤따라 오는 떨리는 소리가 독특해서 언제 치나 기대가 되는 그 악기는 징의 역할을 거의 안하고 도리어 두종류의 심벌즈로 대체하는 분위기였다. 북은 작은북과 두번째 사이즈 팀파니, 그리고 제일 오른쪽 뒤에서 치고 있는 악기는 빨래판 아래 나무를 덧붙여놓은 목악기였는데 불교 음악에서 쓰이는 목어의 비늘 부분을 이용한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트라이앵글의 소리가 조금 튀는 듯 했지만 후반의 트럼펫 소리가 넘 멋졌다. 나중 찾아보니 오호타령은 자진방아타령과 유사한 들노래란다.

레하르의 <미소의 나라> 중 <그대는 나의 모든 것> 아리아, 반젤리스의 <March with Me> 두 곡은 남성 중창단 The Feel과 함께 했다. 귀에 익은 아리아도 좋았고, 네명 모두 얼굴이 빨개지도록 '아아~' 내지르는 행진곡도 신났다. 역시 사람 목소리의 힘은 대단하다. 집에 돌아와서 플라시도 도밍고의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을 들으면서 영어로 쓰면 You mean everything to me라는 걸 알고 팝송으로 방향 전환, 멍하니 들으며 역시 사랑은 참 좋은 것이란 생각을 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리는 4번 교향곡 4악장을 끝으로 신년음악회가 끝났다. 예전에는 공연을 보려면 누구랑 갈까를 정하는 것도 복잡했고, 몇일 전부터 공연 전후에 어떤 것을 해야지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했는데 점점 편한 마음으로 가서 즐겁게 즐기고 오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예매했던 것을 잊고 있다가 한시간 전에 깨닫고 슈욱 가서 편안하게 보고 돌아오는 길이 충분히 기뻤던 것을 보면 좋은 것은 항상 좋은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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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계획이 뭐냐고 묻는 사람에게 대답해 주기 위해서, 라는 이유는 너무 빈곤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 시작은 그 사람이 묻기 전에 생각해낸 것이니까 말이다. 새해를 몇일 앞둔 구랍에 2009년부터는 매달 사회에 좋은 일을 하나씩 해볼까 하는 생각에 기부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네이버 메일을 각종 멤버쉽과 청구서 수령지로 해둔 나는 해피빈 콩을 꽤 모으는 편이고 그것으로 꾸준히 소박한 기부를 하고 있고 핸드폰 문자를 이용한 1,000원이나 2,000원 기부 같은 것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조금은 더 능동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올해의 계획이다. 물론 아직 첫 걸음을 겨우 떼었을 뿐이고 적어도 한 1년 꾸준히 해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국 그 사람에게 답한 새해 계획에는 차마 포함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내년 새해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는 '지난 한해동안 해온 것처럼 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 이야기에 "Good Girl"이라고 칭찬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Save The Children이라는 단체는 전 세계 모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단체이다(http://www.sc.or.kr ). 내가 처음 이 단체를 알게 된 것은 빨간 방울 모자의 로고 때문이었는데, 신생아의 저체온증을 막기 위해 털모자를 직접 떠서 먼 곳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 season2'(http://moja.sc.or.kr)를 홍보하는 그림이었다. GSeshop에서 모자뜨기 키트를 구입하고 구랍 31일부터 새해 첫날까지 이틀 내리 티비 앞에서 아기 모자를 만들었다. 다홍색과 짙은 파랑색 두가지 털실이 들어있어서 나름 디자인을 해보았고, 네이버에서 찾은 뮤지컬 CATS의 단원들의 캠페인 홍보 동영상에서 머리 꼭대기 부분의 술 만드는 법을 이요해서 동그란 털방울도 달아보았다. 기념을 하기 위해서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더니 초점이 좀 안맞긴 하지만 제일 깔끔하게 된 부분으로 각도를 맞춰서 찍었다.


이 엉성한 모자가 제 기능을 다하기를 바란다. 저기 멀리 말리에서 곧 태어날 이 모자의 주인공이 정말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은 사실 태양과 같은 항성이거나 그 항성의 빛을 반사하는 행성이지만,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행복하고 좋은 생각들도 다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이렇게 또 하나의 별이 탄생한 것을 자축한다.

핸드폰 폴더를 뒤져보니 좀 더 선명하게 찍힌 샷이 있다. 역시 균일하지 못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중학교 때 덧버선을 만들던 실습 시간 이후로 처음이니 이 정도면 꽤 성공작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켜보면서 또 하나 더 해볼까 머리를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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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난 항상 음악적으로 대단한 사람보다는 미술적으로 대단한 사람이 항상 부러웠다. 만들고, 색칠하는 기술보다는 2차원, 내지는 3차원 공간에 대한 남다른 시각이 항상 부러웠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하여 빈 공간에 점을 찍고, 선을 긋고, 면을 붙여 나가는 것이 놀라울 따름. 최근 또 다시 본 Sound of Music을 떠올려보면, 파티날 밤에 일곱 아이들이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를 하는 <So long>이라는 노래의 시작 부분에 계단에서 아이들이 서 있는 포매이션을 보면 중앙에 세로로 세 여자애들이 서고 남녀, 남녀 한쌍이 세로로 양쪽에 서게 되는데 한쪽은 네명 중 키 큰 한쌍이, 다른 쪽은 키 작은 한쌍이 자리를 잡는다. 얼핏 생각하기로는 남자애가 큰 편이면 그 앞에 키 작은 여자애를 두는 것이 전체 구도를 보았을 때 균형이 잡혀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한 다음 순간 그들이 짝지어 앞으로 나오면서 그 구도의 당위성을 깨닫는 나로서는 미술이란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는 사족인 것이고, 그런 동경 때문에 그림 구경하는 것을 꽤 즐기는 나로서는 그 그림의 사조가 어떻고, 어느 시대에 그려진 것이고, 작가의 역사는 어떻고 하는 것보다는 그림 자체를 이렇게 그릴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소리에 대한 공연을 보는 빈도수 보다 미술전을 포함한 작품전을 보는 빈도수가 훨씬 낫다. 내게는 아직도 미술에 대한 경원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든 보고 싶다는 열망은 항상 존재해서 이번 퐁피두센터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 교보문고의 대도록 구매시 평일 초대권을 주는 행사에 적극 참여해서 평일 초대권을 지갑에 넣어다닌지 1개월 남짓 되었는데 오늘은 아래와 같은 초대권 2장이 생겼다. 물론 이벤트 신청한 건 나 자신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꼭 될거라고 생각하면서 응모하는 것은 아니라서 이런 소식에는 놀라움과 자랑스러움이 앞서게 된다. 누구에게 자랑할까, 누구랑 언제, 어떻게 보러갈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즐거울 것만 같다.
일단 원래 보러가기로 한 caaf 또한 대도록을 산다고 했으니 19일에는 평일 초대권으로 보러 가고, 새로 생긴 초대권으로는 2월에 Worldsea랑 보러가야겠다. 그렇담 일단 오늘 할 일은 이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worldsea에게 데이트 신청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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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은 부부라는 이름의 가족이고, 또 두 사람은 그것이 운명인 줄 알고 살아온 연인이고, 또 두 사람은 원래 소원한 관계였지만 어느 순간 떨어지기 힘든 애인이 되어버렸다. 서로 존중하는 부부였지만 남녀간의 애틋함은 없었기 때문에 공주는 홍림을 정인으로 생각하게 되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 건낸 수 놓인 파란 두건과 쌍화병은 홍림에게는 생전 처음 느낀 여자의 고마운 마음이었겠다. 왕의 전폭적인 애정은 홍림에게는 마치 운명처럼, 살아온 인생 내내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었지만, 받는 것이 당연하고 섬기는 것도 당연한 그 진실은 새로운 여인의 등장으로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홍림이 왕에게 무릎꿇고 사죄할 때 말했던 것처럼 한순간의 욕망에 흔들려버렸다는 표현은 사실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바보들이 그렇듯이, 막상 손에 쥐어진 행복은 어느새 너무도 익숙해져버려서 그 가치가 흐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은 홍림을 버리고 싶지 않고, 공주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될지라도 홍림과 떠나서 둘이서 살고 싶고, 홍림은 그래도 더욱 소중한 왕을 선택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비내리고 천둥이 치던 그날밤 홍림이 남자로서 책임져야 함을 알게 되고나서 왕이 아닌 사람을 마음에 둘 수 있다는 것을 각성해버린 홍림 때문에 다시 마지막으로 치닫게 되어버린다. 끝끝내 홍림을 놓고 싶지 않은 왕은 위험한 카드를 내게 되고, 홍림은 왕이 선택한-실제로는 그렇게 보이게끔 한 왕의 카드에 넘어가는 거지만- 잘못을 간과할 수가 없어서 왕에게 칼을 뽑아든다. 홍림은 복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잘못된 선택을 한 왕을 모른척 할 수가 없어서 다시 왕이 있는 성으로 돌아간다. 왕은 홍림을 기다리고 있고, 결국 홍림은 왕과 함께 죽는 길을 택한다. 그 순간 호위병을 뚫고 나타난 공주의 모습을 보고 왕이 실제로는 공주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편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홍림이 죽기 직전 공주를 향하던 얼굴을 반대로 돌려 왕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하던 모습은 홍림이 왕에게 기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애정이란 그렇게 순서를 매기기 쉬운 일이 아니다. 공주에게는 지아비인 왕과 남자로서 자신의 애정을 받아주고 또한 바라마지않던 후사를 잉태하게 해준 정인인 홍림이, 왕에게는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부인인 공주와 건륭위가 생기던 때부터 보살펴오며 자신의 일부라 믿어마지 않던 유일한 사랑인 홍림이, 홍림에게는 각인처럼 자신의 운명인 줄 믿고 따랐던 왕과 그 왕을 보호하기 위해 품게 되었지만 어느새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 공주가 있었다. 그 모든 애정들의 크기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속이면서 살 수도 없지만 자신의 환경을 등지고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야 그들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산성 없는 감정과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습을 통해 지극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세 사람에게, 또 이 영화를 만든 유하 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친구들과 <쌍화점>을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들도 그렇고 여기저기 블로그의 글들도 왕이 홍림을 그렇게도 사랑하는데 홍림은 정작 공주(왕비)를 사랑해서 불쌍하다고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보고도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난 홍림이 왕을 사랑했다고 믿고 싶다. 사랑은 이 사람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그 영순위를 매길 수 없는 것이니까 홍림에게는 왕도 공주도 사랑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홍림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두 사람 모두를 마음 속으로 그리며 눈 감았을 것이다.

블로그 구경을 하다가 클레이로 만든 귀여운 왕과 홍림이 있어서 사진을 복사해왔다.
출처는 딸기소보루의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rhksgn/110040412045)
쌍화점
감독 유하 (2008 / 한국)
출연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심지호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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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빛깔과 향기는 인정하면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아줄 수 있는 꾸밈 없는
순수로 서로를 보는 블랙의 낭만도 좋겠지만
우리 딱 두 스푼 정도로 하자

첫 스푼엔
한 사람의 의미를 담아서

두 번째엔
한 사람의 사랑을 담아서

우리 둘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은 슬픔이
모두 녹아져 없어질 때까지

서로에게 숨겨진 외로움을 젓는
소중한 몸짓이고 싶다

쉽게 잃고 마는 세월 속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잊혀져 가고 있겠지만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
모자람 없는 기쁨일테니

우리 곁에 놓인 장미꽃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우리를 부러워할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각자의 빛깔과 향기는 인정하면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그 안에 담아줄 수 있는

서로에게 숨겨진 외로움을 젓는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찻잔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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